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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르신과의 추억
참교사 2017.08.28 10:43조회 3209

 

 

아버님, 그만 하시죠?”

  “이 사람아, 무슨 소리. 30분만 더하게

허리가 안 좋아서 오랫동안 한 곳에 앉아 있는 것이 매우 고통인데 오늘도 장인어른의 간절한 제안을 선뜻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처가와는 10여 년 전부터  아파트 아래 위층으로 같이 살면서 자연히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정년퇴임을 하시고 소일거리 없이 무료하게 지내시는 아버님께 무슨 작은 즐거움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나와 특별히 공유할만한 취미도 없고 또한 술을 워낙 좋아하신 탓에 당뇨, 갑상선, 고혈압 같은 병을 앓고 있고 몇 해 전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등산이나 배드민턴, 테니스 같은 과격한 운동은 무리일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었다. 바둑을 좋아하시는 아버님과 같이 바둑을 두면 좋으련만 내가 바둑에는 문외한이고 무엇인가 마땅한 것이 없을까 고민한끝에 찾아낸 것이 바로 화투였다.

  “조 서방, 잠깐만……

  “아버님, 그만 하시죠. 위험한데요.”

Go를 할까 Stop를 할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아버님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다. 중대한 결정의 순간에 좀 상기된 얼굴로 숨은 거칠어지고 어쩔 줄 모르시는 아버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젊은 시절에는 편지 한 장을 보고난 후에도 가위로 자르고 불에 태워 버리셨다는 치밀하고 완벽한 아버님께서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괜한 일에도 화를 내시며 작은 결정을 하시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을 보면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스톱에 모든 인생이 담겨있다며 이제는 고스톱 예찬론자가 되신 아버님께 오늘은 내가 좀 잃어드려야지하고 다짐을 하고 막상 게임에 임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감추어진 경쟁심이 발로되어 한 점이라도 더 얻으려고 계속 고 고를 외쳐대며 흥분하는 내 모습을 보면 나도 속물근성을 지닌 인간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활짝 웃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니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님께 살아생전 더욱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이 있으셨던 장인어르신께서 지난해부터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시다.

아빠, 영광이에 대한 기억나는 것 있어?

아내의 난데없는 질문에긍께, 고 녀석이 내가 시골에서 포도 농사지을 때 막걸리 한 잔하고 취해서 풀밭에 누워있을 때 할아버지, 얼른 일어나세요. 집에 가셔야지요.“라고 했었지. 내 손주지만 어렸을 때부터 참 착했어.”

장인어르신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억력에 감동을 했는지 신이 난 아내는 그럼, 혹시 예찬이에 대한 기억도 있어?”라고 묻자걔가 누구더라.”한참 생각하시다가 있지, 한 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길을 잃어서 어떤 트럭을 모는 아저씨가 집 근처 삼거리까지 데려다 주었어. 내가 그 때 얼마나 놀랬는지……. 참 그 양반 착하기도 하지. 만약 나쁜 맘 먹었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하지 않았냐?”

장인 어르신의 대답은 늘 고정되어있다. 손주들이 모두 착하고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에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너무도 뻔한 대답을 말이다. 아마 장인 어르신의 간절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어느 날은 멀쩡한 정신으로 아주 구체적인 일까지 기억을 하시는데 대부분 기억을 못하시거나 생리현상까지도 참지 못하고 그만 실례를 하는 바람에 요양보호사 분께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닌 것 같다. 당뇨, 고혈압, 갑상선, 식도암 등 종합병원을 앓고 계신 장인 어르신께서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치매까지 걸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번 갔을 때는 온통 바지에 큰 것을 실례를 해놓아서 아내와 장모님께서 한 바탕 큰일을 치루셨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에도 아무 음식이든 잘 드시는 대식가였는데 이제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과자든 과일이든 모두 다 먹어치우는 수준에 이르렀다.

엄마, 아빠 너무 드시는 것 아냐? 저 봐, 오늘 또 일을 냈잖아?

아내의 잔소리에 장모님께서는 내비둬,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양반이 이제는 먹는 재미까지 없으면 무슨 맛으로 산다냐?”

워낙 성품이 좋으시고 인정 많으신 장모님이라 충분히 그러한 마음을 읽을 수 있지만 남편이 치매와 암, 당뇨로 사경을 해매이는데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을 과식하도록 방치하시지는 않으실텐데 이제는 먹는 즐거움마저 뺏을 수 없으니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 나 쉬 마렵다.”

아내에게는 서슴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지만 사위는 어려운지 내게는 절대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법이 없다. 그럴 때면 아내는 아빠, 그냥 편히 하세요.”라며 패드에 할 것을 권한다.

건강이 온전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실 때는 편지 한 장을 버릴 때도 가위로 잘게 잘라서 불태워서 버릴 만큼 철두철미하고 치밀하셨던 분이 갑작스레 딴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너무 서글프고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이제는 대소변도 본인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어 패드를 착용하고 침대에서 누워서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분이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요양 보호사 분께서 할아버지께 먹을 것 조금만 주세요. 너무 많이 드셔서 힘드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다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는 자식들보다 매일 간병을 하는 당사자로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러한 말씀을 하실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어제는 아들 녀석까지 동반하고 갔더니 같은 병실에 계신 어르신께서할아버지 웃는 모습 처음 봐유. 얼마나 조커슈, 저렇게 손주들까지 오니……

모처럼 장인 어르신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고 얘들아, 할아버지 웃는 모습 보았지? 앞으로 자주 오자.”라며 아들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신이 나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다.

앞으로 장인 어르신께서 살아계실 동안 한 번이라도 더 병원에 방문할 생각이다. 물론 평소에 좋아하시던 과자와 과일을 잔뜩 사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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