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로그인 해주세요
닫기
함께 나누고 싶은 일상 이야기를 자유롭게
첫 눈 내리던 날
참교사 2017.11.27 10:01조회 2586

   어릴 적 우리 집은 큰 마당과 사립문이 있었다. 오징어 놀이, 사방치기, 자치기, 팽이치기 등 우리 집 마당은 동네 친구들의 놀이터였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한두 명씩 아이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온종일 시끄럽게 뛰노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위험한 장난은 하지 마라." 며 크게 개의치 않으셨다. 네 살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어머니셨지만 마음만은 늘 부자이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우리 집에마실’(충청도 사투리로 남의 집에 놀러감을 이르는 말)을 와서 담소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셨다. 그런 분들 중에는 병수 형 어머니도 계셨다. 병수형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병수 형 어머니는 몸이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병수 형은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면서 농사일 거들어 주시는 날이 많았다. 형님은 어찌나 건강했던지 나보다 나이는 열 살 정도 많았지만 나를 번쩍 들기도 했고 쌀가마를 뒷 광으로 옮기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밥도 나보다 두 세배는 더 먹었고 덩치도 컸다. 7남매 대식구인데도 늘 친형제처럼 지냈다.

어느 추운 겨울, 첫눈이 우리 동네를 하얗게 수놓았다.

 

 "원성아(당시 집에서 불렀던 내 이름)" 사립문 쪽에서 힘없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수 형 어머니셨다. 지병이 있으셔서 몸이 야위셨고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아휴, 형님(어머니가 병수 형 어머니를 부르던 말) 오셨어요." 아침을 드시다 말고 어머니는 부리나케 마당으로 뛰어나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요양원에 계시다가 우리 집으로 오셨던 모양이었다. 그 해 겨울,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총각김치에 보리가 많이 들어간 밥이 전부였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며 한 겨울을 함께 했고 병수 형 어머니도 점점 병세가 회복되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인정만큼은 넉넉해서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지금은 어머니는 저 먼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지만  첫 눈이 올 때면 까마득한 세월을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우리 엄마와 지병으로 고생을 하시면서도 병수 형님을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우셨던 병수형님 어머니가 생각난다.   

 

 

댓글 9
1,336개 (15/67페이지)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풀잎76
2264
2017.12.03
아리수
2512
2017.12.03
연이훈이맘
1950
2017.12.02
후니들
2492
2017.12.02
수쿵민쿵
2798
2017.11.29
연이훈이맘
2644
2017.11.28
참교사
2587
2017.11.27
아들러
3079
2017.11.26
소채
2457
2017.11.26
수쿵민쿵
2653
2017.11.25
풀잎76
2879
2017.11.24
후니들
2732
2017.11.24
아리수
2695
2017.11.24
동그라미엄마
2612
2017.11.22
아들러
2613
2017.11.19
소채
2641
2017.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