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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 몽골 봉사현장을 다녀와서
참교사 2017.09.18 10:02조회 3494


 

201384일부터 8일까지 몽골 코이카 봉사 현장을 다녀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약 3시간 만에 칭기즈 칸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까지 이동하는데 대부분 비포장도로가 많아서덜커덩거리며 달리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60-70년대 상황을 연상케 했다. 물 부족 국가라 그런지 배수시설이 안되어 있어 우리 일행이 방문했던 이틀간 약간의 비가 왔었는데도 불구하고 도로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어 차량 이동에 불편함이 있었다. 몽골은 인구가 300만정도이며 인구부족으로 제조업이 발달되지 못해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자원이 GDP33%로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개발해야 할 시설들이 너무 많았다. 광산개발로 엄청난 부자도 많이 있어 양극화가 심하고 주 관광객은 중국, 러시아, 한국이라고 한다. 몽골에서도 석유가 생산되는데 가공을 못해서 중국이 가져간다고 하는데 석유정제 기술이 으뜸인 우리나라가 몽골 석유가공 산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차창 밖으로 보니 아파트를 한창 짓고 있었고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즐비했다. 몽골은 연강수량이 우리나라의 하루 강수량에 맞먹을 정도의 250mm로 심각한 물 부족국가였다. 칭기즈 칸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절대로 농사를 짓지 말고 가축을 키워라.’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면적은 한국의 7.4배로 상당히 넓은 땅이 있으면서도 국토를 매우 좁게 사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교통체계가 잘 안 되어있고 운전자들도 아무 곳에서나 유턴을 하거나 신호를 지키지 않는 등 교통규칙을 잘 지키지 않아 교통체증이 심각한 것이 문제였다. 고도는 한국의 오대산 높이에 해당하는 평균 1580m의 고산지대로서 처음 며칠은 코피가 날정도로 매우 피곤해서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다. 몽골의 성 평등 지수는 세계 199개국 중 56위로서 높은 편이란 사실이 인상적이었고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은 맡아 통치하는 이원집정부제로서 포풀리즘 정책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여 외국인들의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았던 것은 성인문자 해득률이 97.4%로 문맹률이 매우 낮고 자원이 풍부하여 리더십이 탁월한 지도자가 나와서 올바른 정치를 한다면 몽골의 발전은 무궁무진하겠다는 기대를 가져보았다.

 

KOICA 몽골 사업소에서는 주로 몽골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정부 정보 통합 센터를 건립하고 도시 개발과 농업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최흥율 소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코이카 몽골 사업소에서 몽골 코이카 사업 현장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권노을 청년인턴사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좀 안타까웠던 것은 몽골은 국토의 2/3가 사막으로 사막화 진행과 급격한 도시화로 쓰레기 매립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이었다. 2013214MBC 프라임 <코이카 기후 변화 대비 프로젝트, 아시아인의 인심을 바꾸다>2013212SBS 모닝 와이드에 소개된 <세계 속의 코이카>란 방송분을 함께 보면서 바트슘베르 요양원의 윤연 단원과 초이발산에서 버섯재배에 성공을 한 정석빈 단원 등 코이카 봉사단원의 맹활약을 보면서 한국인이란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최흥율 소장님께서는 청소년들이 국제개발 협력 마인드를 가지고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서 UN에 많이 진출해야한다며 글짓기를 한 것으로 끝나지 말고 지속적으로 국제개발 협력에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셨다. 점심 식사로 우리나라의 제육볶음에 해당하는 요리를 먹었는데 매우 짠 것이 특징이었다.

둘째 날은 우영섭 몽골 물 랜드 사업단장으로부터 야르막 물 홍보관에 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이 파견되어 물의 생성과정과 물 절약을 홍보하고 수도 계량기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몽골은 댐이 없어 지표수가 없다고 한다. 울란바트르에 12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40만 명만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어 80만 명은 하루에 7L만 사용하여 세수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한다. 코이카 몽골 사업소에서는 몽고의 수도인 울란바트르 아파트의 기계실에 열교환기를 교체하여 뜨거운 물이 나오게 해줌으로써 유목민의 전통가옥이었던 게르에 살던 사람들이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어 대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게르는 상수도가 전혀 보급되어 있지 않아서 우물에서 물을 퍼서 겨우 손만 씻는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셋째날 방문했던 고아원에서는 주먹밥을 먹고 마실 물이 없어 목이 막히고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몽골인 들의 60%가 게르에 거주하고 있는데 나무나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염이 심각하다고 한다.

셋째 날은 버비스트 고아원을 방문했다. 고아원으로 이동 중 이틀 연속 내린 비로 도로에 물이 흥건했고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야크, , 양 들의 모습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이 번 방문 여정 중 가장 의미 있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일 것 같아 내심 큰 기대를 했었다. 주먹밥도 만들어 먹고 색종이 접기, 색칠하기, 풍선 놀이, 배구 등을 하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몽골에서도 소외 계층인 고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보람 있었다.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눈동자와 티 없이 맑은 표정에서 전혀 고아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초콜릿을 주면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알려주자 모두 감사합니다.”란 말로 인사를 했다. 세 살 정도의 아이는 내 무릎에 앉기도 하고 엎어달라고 재롱을 부렸다. 우리들이 준비한 주먹밥과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었던지 내 옷과 모자 근처에 응가를 하기도 했다. 좀 나이가 먹은 아이들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과 젠틀맨을 춤과 노래를 불렀는데 동작 하나 하나가 정확하고 멋이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하여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그런 환경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양현미 과장님께서는 한국에서도 잘 방문하지 않았던 고아원을 몽골에서 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체험이었으며 우리나라에 가서도 이와 같은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저녁은 몽골식 철판 요리를 먹었는데 특히 만두 속에 넣은 양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내일 양고기 요리인허럭먹기 체험이 은근히 기대되었다. 서빙을 하는 직원의 유니폼에 ‘Kiss me I'm Mongolian'란 문구가 눈에 뜨였는데 친절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저녁 식사 후 몽골 전통 공연을 관람했는데 어깨를 흔드는 모습이 절묘했다.

넷째 날은 테렐지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이동 중 비포장도로의 충격이 워낙 커서 엉덩이가 아플 정도였다. 몽골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가 도로 포장이란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았다. 테렐지 국립공원 입구에서어워를 보았다. ‘어워는 우리나라의 서낭당으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동차도 경적을 세 번 울렸으며 이곳을 세 바퀴 돌면서 돌을 쌓아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어워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학교에 가려면 꼭 서낭당을 지나가야했었는데 배고픈 시절 서낭당에서 정성을 드리고 명태 대가리나 고수레 떡을 놓고 가면 그 것을 서로 먹겠다고 정신없이 뛰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테렐지 국립공원으로 이동 중에 보았던 바위산을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듯 한 절경이었다. 말 타기 체험을 했는데 발에 너무 힘을 주어서 발목이 아팠다. 말이 안 가고 서있거나 천천히 가면란 말을 사용했는데 는 우리나라에서 이려와 비슷한 용어로서 어서 달려라.’는 말이었다. 말 타기는 처음에는 좀 겁이 났지만 탈수록 신나고 좀 빨리 달려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말을 탄 후 어제 저녁 몽골식 철판요리에서 조금 맛보았던 만두피 속의 양고기를 먹었다. ‘허럭이란 요리로서 양고기를 감자와 당근을 넣고 푹 삶은 것으로 입에 딱딱 달라붙을 정도로 감칠맛이 났다. 그 맛을 정확히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고소한 우유 맛에 목 넘김이 부드러워 먹기가 참 좋았다. 그런데 일행 중 대부분은허럭의 맛이 부담스러웠던지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나만 맛있게 먹는 것 같아 일행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허럭을 먹으면서 몽골인의 활력은 말 타기와 허럭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숙소로 이동 중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기차 박물관을 잠깐 구경했다. 스탈린의 얼굴이 새겨진 기차도 볼 수 있었다. 중국 북경에서 몽골까지 철도로 20시간 정도 소요되며 몽골 울란바트르에서 러시아까지 철도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다섯 째 날은 몽골 영양 개선 연구소와 우리나라의 보건소에 해당되는 곳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한국의 With와 결연하여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몽골인의 식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칭기즈 칸이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가 이동을 잘 했고 고기를 말려서 먹을 것을 전시에 잘 공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구소에서 아롤수태차를 맛보았는데 나는 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일행 분들 중 상당수는 우유로 만든 아롤이 맛이 있었는지 선물로 가져간다고 마트에서 구입을 하기도 했다. 만두는 감자, 야채, 양배추, 김치를 넣은 호쇼르와 찐만두에 해당하는 보쯔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잘 못된 식습관으로 몽골의 심각한 만성질환자들이 많이 증가하여 식생활 교육도 진행하고 있었다. 3명중 1(38%)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1년에 6000명 정도 사망을 한다고 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만성질환 고위험 군이 많은데 5명중 1명꼴이라고 한다. 음식을 짜게 먹고 야채나 과일을 적게 섭취하고 지방이 많은 육류를 즐기는 식습관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교 급식 시범 운영 사업을 펼쳐 아이들이 학교에 밥을 먹으러 갈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몽골의 보건소는 보건소 내에 입원실이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와 달랐다. 보건소에서는 열흘간 무료로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오후에는 수흐바타르 광장과 자이승 전망대 그리고 이태준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수흐바타르는 몽골의 정치가이면서 혁명가로서 몽골 혁명의 아버지로 불린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 동상이 우뚝 서있었다. 자이승 전망대는 한창 아파트 건설이 진행 중이었고 울란바트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태준 선생님은 몽골에서는 매우 유명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로서 일제 강점기에 몽골에서 의술활동을 펼치고 독립 운동을 하신 분이셨다.

 

몽골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날씨가 매우 선선해서 무더위와 씨름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는데 밤에는 에어컨을 켜놓은 것과 같이 춥고 시원해서 모처럼 힐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고 보람 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버비스트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었다. 아직은 여러 가지로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 코이카 봉사단원들이 몽골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정말 희망이 있는 위대한 나라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었고 21세기의 푸른 꿈나무인 초등학생들에게 세계를 향해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꿈과 패기를 심어주는 일에 일조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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