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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을 주는 부모에서 자긍심을 주는 부모로
부모공감2014.11.28조회 6408



“넌 그거 밖에 못하니”, “엄마, 아빠가 네가 그러라고 열심히 일하는 줄 알아”, “챙피한 줄 알아라” ...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에게 하는 많은 쓴소리들은 자녀에게 수치심을 주고 깨닫기를 원해서 하는 말들입니다.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문화 안의 일부는 수치심을 주는 양육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일이 많습니다.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마도 본인들이 그렇게 배웠기때문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치심을 주어도 아이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아이들의 뻔뻔함 때문에 오히려 더 화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수치심을 경험하고 나면 대오각성하고 아이들이 분발할 것으로 기대하시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분노와 적개심만 높아져가고 앙금만 남습니다. 아이들이 수치심을 겪으면서 그것은 모멸감으로 바뀌고 결과적으로 부모나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면 답답해서 부모나 선생님들은 더 강력한 수치심을 안깁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지요.


상담치료에서 어떤 특정한 행동을 잘못한 경우 그것을 수정하는 방법을 수치심을 중심으로 크게 나누면 수치심을 주어서 치료하는 방법과 수치심을 치유해서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수치심을 주어서 치료하는 방법은 수치심을 느끼는 자기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을 멈추기 위해 자기고백을 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추동하는 것입니다.


 “챙피한 줄 알아야지”라고 말하실 때 “맞아요. 정말 창피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제가 스스로 바뀌도록 노력할께요”라고 말 할 수 있는 아이라면 이 방법은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도 창피해죽겠는데, 엄마까지 날 창피하게 만드는 거야”라고 하는 아이에게는 이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의 상태인 아이들은 자신에게 밀려오는 수치심을 자신이 받아들이기가 어렵기때문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위로를 바라지요. 창피할만한 일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창피한 일이 숨겨지기를 바라기때문입니다. “너 오늘 힘들었겠다. 창피당해서, 하지만 괜챦아”라는 말을 듣기를 바라기때문입니다. 수치심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을 직면하기보다는 공감받고 싶어하기때문이지요.


 그래서 수치심을 치유해서 도움을 주는 방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담기법은 공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수치심을 주는 방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담기법은 직면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 우리 아이에게 훈육적으로 공감이 더 필요한가, 직면이 더 필요한가를 잘 판단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행동을 놓고 매번 위로만 할 수도 없고, 매 번 직면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어려움을 갖게된 아이들에게 느끼는 것은 현재 많은 경우, 부모님의 스트레스가 높을 수록, 선생님의 스트레스가 높을 수록 차디찬 직면이 더 많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오직 직면에 의해서만 아이를 다루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문제는 악화되고, 관계도 악화되어버리고 맙니다.


수치심의 반댓말을 많은 학자들은 자긍심이라고 합니다. 


수치심을 느끼던 부분이 자긍심으로 바뀌게 노력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잘못 하는 
부분이 잘 하는 부분  이 되던가 아니면 잘못하는 부분보다는 잘 하는 부분을 더 강조
하던가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쉽게 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5살짜리의 나쁜 습관을 바꾸는 것도 몇 날 몇 일 애를 써야합니다. 10살짜리의 나쁜 습관은 더 오래 걸립니다. 어른들이 자신의 몸에 밴 나쁜 습관은 병이 되어도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마음 속 깊은 이유가 숨어 있지요. 그 결과인 행동을 놓고 그것을 고치라고 수치심을 주는 것은 마  음 속 깊은 이유를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큰 숙제입니다. 더군다나 계속 창피를 당하면 마음 속 이유를 찾으려들기를 포기하고 미움받는다는 감정만 커갑니다.


그래서 저는 10번 공감하고 1번 직면하기를 권합니다.


 직면은 효과가 있다고 판단될 때, 즉 자신도 꽤 느끼고 있을 때 사용해야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상담기법에서 직면은 마음에 따귀를 때리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학이 또 50점이야, 미쳤니” 라고 말하는 것보다 “니가 수학이 여전히 힘든가 보구나,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또 한번 찾아보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이가 수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가 뼈빠지게 일하는데 네가 게임만 하고 앉아 있니?”라고 말하는 것보다 “네가 게임이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것이 없나 보구나, 우리 함께 더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보도록 노력해보자!” 라고 말하는 것이 최소한 더 관계를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입에 풀칠을 해주도록 애쓰던 부모님에 대한 아련한 마음은 88올림픽 이후 풍요속에 자라던 아이들에게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아이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았기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죄는 아니지요. 그 때를 생각해서 지금의 아이들이 창피한 줄 모른다고 일장 잔소리를 하신다면 아이들은 영문을 모를 것입니다. 단지 나를 미워하는구나라고만 생각겠지요.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다 하셔도 새마을 정신으로 지금의 아이들에게 창피를 줄 수는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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