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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놈 나쁜놈 그리고 청소년
부모공감2014.11.27조회 5831

“좋은 말로 해선 안 되겠구먼? 어디 맛 좀 봐라”

이런 협박 많이들 당해봤겠지. 손부터 나가려는 그런 협박. 정말 나쁘다. 
말로 하면 다 될 텐데 왜들 그러실까? 좋은 말로 해서 안 될 때는, 나쁜 말로 하면 되지. 
그래-서 말 많은 두 명이 뭉쳤다.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이번 달의 주제는 청소년!
 


청소년 ? 네가 갖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기에

잃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운지 나는 모르겠다.

청소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주절주절 뭐라뭐라 갖다 붙이며 이야기하겠지만, 글쎄 우리나라에도 청소년이란 게 있나? 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아직 몇 명쯤은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면 나쁜 놈 컨셉이지만 관대함을 발휘해 멸종 위기종 정도라고 해 둘까? MODU를 즐겨보는 똑똑한 독자라면 아마도 이렇게 반론해야 할 거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지만, 청소년이 멸종 위기라는 건 너무 멀리 간 거 아니냐고.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묻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네가 정말 청소년이 맞는지.
일단 소년. 한자로는 나이가 적다는 뜻이다. 청소년은 거기다 앞에“靑(젊을 청)”자까지 붙어있으니 청소년이라 함은 반드시 젊으면서도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말이다. 오호라. 그렇다면 젊다는 건 무엇일까?
적어도 우리 시대에 젊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가능성이란 우리가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이고, 그 불확실성은 실패할 확률이기도, 성공할 확률이기도 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젊음이라는 말에 도전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다. 도전이 가능성을 만들고, 가능성이 있으니까 도전을 하는 게지.
 
“이거 하다가 성적 떨어지면 어떡하죠?”
“그렇게 공부하면 확실히 성적이 오를까요?”
 
가슴에 손을 얹은 너. 너는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가? 네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기에 잃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운지 나는 모르겠다. 네가 뭔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투자를 하기에 확실한 보상만을 찾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마치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한 도전과제라도 되는 듯이 저런 꼴사나운 질문이나 해대는 거다.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겠지. 나이 먹어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걸. 후회나 열심히 하겠지.
사회는 젊은 날의 도전을 칭송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더더욱 젊은 날의 도전, 그리고 실패를 등 두드려주고 격려해주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이들의 도전을 강요하고 닦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유는 간단하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뭔가 많이 가진 양, 잃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새가 꼴사납기 때문이다. 집이 가난해서, 머리가 나빠서, 학원 가야 하느라 바빠서, 이거 하다가 잘못될까 봐 같은 핑계를 갖다 대면서 고작 시키는 일이나 억지로 하는 너는 특히 더 그렇다.
강요하고, 닦달하다 못해 이제는 부탁한다. 부디 청소년이면 도전하라. 그게 꼭 새로운 일, 거창한 외부 활동이 아니어도 좋다. 너의 삶에 펼쳐진 과제들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도전의 열매라면 성공도 좋고, 실패도 좋다. 시간이 흘러 소년이 아니게 되더라도 부디 죽는 날까지 젊은 네가 되기를.
 

너무나 현실이 힘들고
가혹해 지칠 때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너희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청소년이니까.

법률상 완전한 행위능력자가 되는 연령을 성년이라고 하며, 이에 미치지 못한 연령을 미성년이라 하고, 청소년은 여기에 포함된다. 1997년까지는‘미성년자’라 하면서 보호해 왔고, 1997년 3월부터는‘청소년’이라 부르며 보호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와 사회는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법률’로써 보호한다.


즉, 청소년은‘보호’와‘배려’가 필요한 대상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와 사회는 너를 보호할까? 네가 미성숙한 존재라서? 판단력이 떨어지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서? 그렇지 않다.  우리는 너를 통해 미래를 본다.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한 너는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것이다. 즉, 네가 건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은 너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도 매우 큰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너는 이 국가와 사회로부터‘이 곳을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받는 대상이라는 말씀.
그러니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너를 기다려야 할 의무가 있고, 배려할 책임이 있다. 그에 앞서 지금의 너를 힘들게 하는 현실을 만든 어른으로서 기꺼이 너를 보듬고 안아줄 거다. 그래서 괜찮다. 실수도 괜찮고, 늦어도 괜찮다. 
부탁건대 네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너의 날이 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수 있으니 부디, 조급해하지 마라. 자책하지도 말고. 내신 성적이 떨어졌다고, 모의고사를 못 봤다고, 수능을 망쳤다고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마라. 네가 인생의 전부라 여기는, 그래서 너를 기죽어 지내게 하는 그깟 숫자들은 너의 가치를 표현하기엔 부적합하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는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청소년이니까.
 
“다만 너에게 한 가지만 부탁할 게 있다면, 
자기 자신을 좀 더 아껴주고, 응원하라는 것.”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현실과 싸우느라 피곤한 청소년은 자신에게 가혹해지기 쉽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지고 있다고. 그러다‘나는 왜 이 모양이지.’‘나는 이것밖에 안 돼.’라며 자신을 넘어뜨리고 짓밟는다. 이제는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너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 단순히 수억 분의 일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네 부모님의 사랑, 그 전에 부모님의 부모님의 사랑, 또 그전 세대의 사랑. 사랑과 사랑이 수많은 세대 동안 이어지고 이어져 내려와 결실을 맺은 너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너무나 현실이 힘들고 가혹해 지칠 때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투정부려도 좋고, 잠시 쉬어도 좋다. 너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청소년이니까. 

※ 본 기사는 청소년 진로매거진 MODU [16호]에 소개된 내용으로 
    학부모 정서에 맞게 일부내용을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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