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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이는 쉽지 않다
부모공감2014.11.28조회 6538



 한국 사회는 아버지 없는 사회였다. 이 표현이 너무 과격하면 아버지 양육이 부족하고 간접적으로 제공되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현재는 형제 없는 사회로 바뀌어 있다. 둘인 가정이 절반이고 나머지가 외동이 가족이며, 소수가 세동이 이상의 가족이다. 예전의 가족 규모에 비하면 훨씬 단촐해졌다. 아버지의 역할 부재와 형제의 역할 부재가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버지의 역할 부재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많이 경험했으므로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형제의 부재로 인한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것 같다.

  

외동이 양육에서 순서란 별 의미가 없다. 순서가 없으므로 양보가 없고 양보가 없으므로 배려가 없다. 외동이는 언제나 자기가 대장이고 자기가 첫 번째 였다. 이런 외동이의 극단적 문화현상을 중국에서는 소황태자 증후군이라고 불렀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 교실에는 소황태자들이 반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형제를 통하여 우리는 순서를 배우기도 하고 인내심이 형성되었으며 갈등을 해결하는 삶의 기술을 익혔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힘든 1인분 사회로 가는 도정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외동이 가정을 선택했고 그런 가정이 늘었으며, 우리는 지금 그런 가정 출신의 아이들을 돌봐야할 뿐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아버지 없고, 형제 없는 상태에서 진일보하여 어머니 없는 양육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맞벌이 가정이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아이들이 어머니와 편안하게 지낼 시간도 줄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진료실에서 자주 아이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엄마 노릇이나 제대로 했어! 공부하라는 말 말고 한 게 뭐가 있어?” 실정이 이렇다. 하나 밖에 없어 애지중지하고 과잉으로 돌보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다. 어머니도 피곤하고 각박하며 정서적으로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관리하기에 급급한데, 그 관리에 영향은 공부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무수히 넘치는 양육서적이 책방에 난무하지만 이 책을 읽고 양육과잉인 가정과 정서적 돌봄이 부재한 프로젝트팀같은 가정들도 과잉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신의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학교로 온다. 부족한 애정 속에서 자신의 정서적 문제에 대한 환기를 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학교에 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아이들은 이 문제를 다시 학교에 가지고 온다.

이제 학교는, 교실은 아이들의 정서적 문제를 처리해야하는 도가니가 되었다. 아이들의 문제로 들끓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의 문제는 쉽지 않다. 아이들의 관계 문제도 쉽지 않다. 아이들끼리는 서로 관심받기 위해 경쟁하고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화내고 힘들어한다. 외동이 가족이나 두동이 가족에서애정을 독점하는데 익숙했던 아이들은 30명 이상의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을 독점하고 싶어한다. 학교체제는 그런 경쟁을 줄이기보다는 부추킨다.

   

학교체제는 극단적 편애를 하고 편애의 대상이 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차디찬 대접을 한다. 그 결과 아이들 사이에서는 피해의식이 들끓고 있다. 서로가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도 관대하고 여유있고 양보에 능숙한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은 자신이 대접받은 대로 또래를 대접하고 있다. 무시하고 멸시하고 괴롭힌다. 괴롭힐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래 사이가 형제같은 사이가 아니라 끝없는 경쟁자일 뿐 사이이다.

   

피해를 주고 받는 사이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우정, 협동, 기여, 봉사, 이런 말이 얼마나 고전적인 용어인가? 우정은 없고 패거리는 있으며 협동은 없고 경쟁이 우선시된다. 기여라는 착한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손해보는 일을 하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데, 봉사는 이제 스펙에 필요할 뿐이지 않은가.

   

사회가 너무 각박하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모두 자기 생존이 가장 큰 이슈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생존하기 위해 관계는 이용의 대상이다. 어떻게 하면 이 각박함을 용해할 것인가? 교실 안에서 평안함과 안정 그리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할 것인가? 교사 자신도 경쟁에 너무 익숙해서 점수주고 잘하는 아이들에게 칭찬하고 아이들간을 경쟁시키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유익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중재할 수 있을 것인가?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경쟁에 대한 우리의 혁신적 관점이다.

  

좋은 경쟁이 있고, 나쁜 경쟁이 있으며, 교실을 흉흉하게 만드는 칭찬이 있고 모두에게 효과적인 칭찬이 있으며, 그리고 관심과 인정을 아이들간에 나누어가질 수 있는 방식이 분명 있다.  


못했다라는 말을 빼기로 하고, 틀렸다라는 말을 줄이고, 다르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자.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여와 협동, 봉사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아름다운지를 더 구체적으로 아이들이 교실에서 체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아이들이 이런 교실 기후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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