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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보호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
부모공감2015.01.30조회 4279


요즘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훈육의 2가지, 아주 양극단의 패러다임에 대해 얘기 해보라고 하면, 첫 번째가 대부분의 우리가 알고 있는 중산층 가정의 상당한 아이들이 굉장히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과잉보호.

 

아이가 하나 내지는 둘인 사회에서의 양육의 가장 전형적인 스타일은 사실 과잉보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어떤 힘든 일을 하는 것을 부모로서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아이가 힘든 일을 내버려 두는 게 절대 편하지 않다.(물론 예외적인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좀 힘들게 하면 우리가 거두어 주곤 한다. 그럼, 거두어 준다는 정도가 어느 정도일때 과잉보호이고, 또 어느 정도일때 과잉보호가 아닐까? 인간의 심리나 행동의 특징이지만 칼처럼 딱 잘라서 말하긴 어렵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이 과잉보호를 받다 보니깐 힘든 일을 많이 해보고 크지 않는다. 힘든 일은 안 하고 큰다. 이것은 결국 많은 아이들이 재미있는 것만 하고, 싶어 하고 힘든 거는 안 하고 싶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패턴이 고착되다 보니깐 힘든 일은 누가 해야 되는 것으로 인식되는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힘든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굉장히 넓게 퍼지게 되고, 이미 상당수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조금 힘든 일을 시키면 ‘왜 이런 거를 시키느냐.’하는 저항의 정도가 예전에 비해서 훨씬 더 커졌다.

 

청소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이미 부지기수이다. 집에서 자기방 청소도 해본 적 없는 애들도 많고 무거운 것도 나른 경험도 없는 애들이 많고. 수고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애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제 어른의 입장에서 또 학교의 선생님 입장에서 ‘이거를 가지고 뭐 그러냐.’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도 있다. 고작 책상 나르고, 선생님이 부탁한 짐 좀 날라주는 거 뭐 엄청난 일을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것들을 거부하는 아이들의 경우,

첫 번째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 그런 애들, 두 번째는 해주긴 해주는데 댓가를 원하는 아이들이 있다. 꼭 뭘 받고 해줘야 된다는 애들. 그런 아이들의 특성은 그 아이들이 특별하다기 보다는 요즘의 대체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자신이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꼭 참고 어떤 걸 견뎌서 해봤던 자체가 별로 없다.

 

과잉보호라고 하는 것에 학문적 정의야 복잡하지만 그 핵심은 간단하다.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성취해야 될 발달과제를 부모가 대신해주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것. 대신 해주는 것과 도와주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아이가 잘 성취하도록 옆에서 잘 도와주는 것과 아이가 실제로 성취할 힘이 없는데 부모가 대신해줘서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마치 그런 성취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아이는 그런 걸 자기가 마무리까지 끝을 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아이한테 어떤 과제를 냈는데 그것을 해오면 그 아이는 그 과제를 달성한 아이처럼 생각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가는데, 실제 아이는 사실 그걸 성취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단계를 또 나가야 하니깐,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음 단계로 나가려면 그 자리에서 아이 스스로 해낼 수가 있을까? 이런 아이들은 엄마의 과잉보호적 지원을 받아서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코치를 받고 그 다음 날 와서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시행착오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답답해서 대신 해주는 부모님도 계시고 또 아이가 ‘잘 해내고 있다.’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욕망도 있다.

과잉보호의 결과는 사실 아이들한테는 성취감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과제를 만났을 때 과잉보호에 대한 비난으로 사실 끝을 맺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잉보호는 사실은 애들의 문제라기보다 부모의 문제이다. 부모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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