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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교수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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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했어, 안했어?’의 대화법

부모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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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13:59

한 어머니가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가 통 말이 없고, 뭘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짜증만 낸다고 합니다. 도무지 아이 속을 알 수가 없어 답답해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아이는 부모님과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자신은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가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지겹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다고 합니다. 특히 중학교 2학년쯤이면 혼내듯이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기도 한 상태라 뭘 물어봐도 묵묵부답일 때가 많습니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모와 대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나름의 내력들이 있습니다.

    




 

 

한참을 엄마가 이야기하게 두더니 드디어 그 남학생이 침묵을 깨고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물어보는 것은 뻔해요. ‘잘했니? 얼마나 했니? 다 했어?’ 이런 것이 엄마의 대화예요. 이런 얘기를 유치원 때부터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학원이나 유치원에 갔다오면 엄마의 첫 질문은 ‘잘했니?’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시작되는 거지요.

 

‘오늘 할 것은 뭐니?’

‘다 하고 놀아라.’

‘얼만큼 했니?’

‘언제까지 할 거니?’

‘왜 안하고 있느냐?’

‘빨리 해라.’

‘왜 꾸물대니?’

‘컴퓨터나 TV 그만 기웃거려라.’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잘 시간이 코앞이다.’

 

그 다음날 학교 갔다 오면 또 ‘잘했느냐? 혼나지 않았느냐?’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작되죠.

 

‘빨리 할 일 해라.’

‘계획대로 해라.’

‘왜 이것밖에 안 했느냐.’

‘꼭 말을 해야 하느냐.’

‘오늘은 다 할 때까지 안 재울 거다.’

‘정말 미치겠다.’

‘미리미리 해놓으면 안 되느냐? 나 같으면 다 해놓고도 남을 시간이다.’

‘안 하면 죽인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봤다.’

‘인간이 자기 할 일을 해야 밥값을 하는 거다.’

‘제대로 안할 거면 하지 마라.’

‘앞으로 아무것도 해달라고 하지 마라.’

 

뭐 이런 말이 엄마가 하는 말의 반 이상이에요. 내가 무슨 엄마한테 뭔가를 해놓아야 하는 노예예요? 그렇죠! 노예 맞죠. 공부 노예, 숙제 노예, 아니면 무슨 엄마가 빚 해결사 같아요. 나는 빚쟁이고. 공부 빚쟁이, 성적 빚쟁이. 이런 식의 이야기나 대화는 지겨워요.

 

‘그만 해도 좋다. 좀 쉬어라.’

‘오늘은 안 해도 좋으니 그냥 실컷 놀자.’

‘그래, 보니까 충분히 하려고 했네.’

‘됐다.’

‘괜찮다.’

 

뭐 이런 말은 거의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어요. 정말 이런 식으로 유치원, 아니 그전부터 계속 이렇게 지냈는데 지금은 싫어요. 엄마 얼굴만 봐도 짜증나요. 빚쟁이가 빚 받으러 온 사람, 좋을 리가 있어요? 노예가 주인이 나타나면 좋아하는 거 봤어요? 우리 엄마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은 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지 대화가 아니에요.“

 

아이의 어머니는 ‘이놈 봐라?’ 하면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렇죠. 어찌 보면 이것은 대화라기보다는 점검, 확인, 압박일 뿐이지요. 대화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런 식의 대화는 아이로서는 요구에 답하는 것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대화를 6~7년 하고 나면 지겹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그런 상사 밑에서 6~7년 일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아마 그 사이에 직장을 바꾸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날 이후로 이런 식의 했느냐, 안했느냐 대화가 얼마나 많은지 여러 자리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의 일방적인 대화를 놓고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이들은 듣기도 싫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아마도 어떤 강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유전자에 그런 압박이 박혀 있다고 할 정도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 강박 유전자가 작동해서 자녀에게 자동적으로 압박을 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마을운동의 영향 탓일까요?

 

부모와 이런 대화를 주로 해온 아이들에게는 기억나는 추억도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족 여행도 일기로, 숙제로 이어지고 여행가방 안에도 문제집은 챙겨 가야 했던 이 아이들에게 여행은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이 아니라 단지 숙제를 위한 행사였을 뿐입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그저 오랫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려온 척박한 마음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아이의 표정도 그랬습니다. 생기 없고 무언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갖는 피곤한 기색, 만사가 다 귀찮은 듯한 짜증, 하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부모란 으레 자녀에게 해야 할 것들을 하라고 말하는 임무가 주어졌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하라는 것을 제대로 해낸 적도 없는 자식이 이제 대들기까지 하니까 이해되지 않고 화가 날 뿐이라는 느낌만 가득해 보였습니다. 이 아이의 마음을 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열다섯 살 아이에게 생동감 넘치고 활기찬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면서 지내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족이 무슨 공장인가요? 해야 할 일로 가득차고,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가족이 무슨 주인과 노예 관계인가요? 부모가 생각하는 조건을 만족시킬 때까지 아이들이 소외된 노동을 해야 하는. 이런 불만이 축적되면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거부할 힘이 생겨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이런 강박적 요구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또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아마 본인도 삶에 쫓기고 불안하고 자식들이 힘들게 살까봐 걱정돼서 그랬겠지요. 그리고 보고 배운 것도 그런 것이었겠지요. 그저 자식 공부만 시켜놓으면 알아서 살더라, 자녀를 보살핀다는 것은 공부할 수 있게 하고 공부시키는 것이지 그 외에 또 무슨 부모 노릇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셨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정서라는 것을 미처 모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라지 않았으니까요.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정서를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미국의 대상관계 정신분석이론가인 크리스토퍼 볼라스(Christopher Bollas)는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즉 정서적으로는 무감동하고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정상처럼 보이는 병(Normotic Illness)'이라고 부른 바 있습니다. 속이 텅 빈, 과제만 해내면 다른 정서적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반영적 경청이나 성찰을 제공하지 않았던 양육의 결과로 빚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 아이의 상태는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기 없고 무기력하면서도 성적이나 수행이 아주 뒤떨어지지는 않는 상태를 보니 볼라스의 이론이 생각났었습니다.

 

 

 

[출처] 중2병의 비밀(김현수. 덴스토리) 

[알림] 본 칼럼은 '중2병의 비밀' 도서 내용을 편집한 것으로 그 내용과 길이가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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